짧은 부산 여행 (2009-10-09, 금) + α
여행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뭣하지만
하여간 부산에 다녀왔다.
업무 아닌 일로 부산에 가 본 건 처음이었다.

부산에 왜 하필 주말도 아니고 금요일인 저날 하루 갔다 왔느냐 하면
이번 부산 영화제에 두기봉 감독님이 오셨고
저날 두기봉 감독의 신작 [복수] 상영 및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토요일엔 다른 일이 있어서 서울에 올라와야 했다.

00:25에 출발하는 우등고속버스를 탔다.
잠 잘 자는 동안 버스는 달려 부산에 도착하니 04:45.

05:10 전철 첫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면서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원래 계획은 여유있게 극장 부근에 도착해서 해운대 구경하다가
11:00에 시작하는 영화를 보고
오후에는 남포동 쪽으로 이동해서 태종대와 용두산 공원을 본다는 거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영화 시작 전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을 것 같은데다가
15:00시에 시작하는 두기봉 감독 마스터 클래스에 계속 미련이 남는 것이었다.
결국, 서둘러서 아침 일찍 태종대를 보고,
오후에 마스터 클래스 표를 구할 수 있으면 그걸 보고,
못 구하면 해운대 구경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남포동 역에 내리자마자 편의점에서 아침을 해결할 생각이었지만
아차, 편의점 같은 게 눈에 띄지도 않을 뿐더러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연 가게 자체가 드물었다.

터미널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올 걸.
우리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이러면서 태종대로 가는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만
아니나 다를까 정류장을 못 찾아서 잠시 헤맸다.
뭐 그 덕택에 영도다리를 걸어서 건너 본 것 같긴 하다.
건너면서 주변 풍경에 여기 정말 항구도시구나 하고 실감하기도 하고.

간신히 가게를 하나 발견하여 버스 타기 전에 아침을 때우기 위해 빵과 우유를 샀다.
가게에 있었던 강아지의 미모가 기억에 남는다.
이날 강아지를 여러 마리 보게 되지만 이 강아지가 제일 잘 생겼다. 사진이 없어 아쉽네.

태종대.
아침 일찍 가서 그랬는지,
운동하러 오신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대부분이었다.
강아지를 많이들 데리고 다니시더라.

부실한 체력으로 느릿느릿 걸어
나중에는 내리막길이겠거니 위안을 삼으며
코스를 따라갔다.

카메라 배터리가 고장난 걸 모른 채 충전해 가지고 간 탓에
사진 한 장 찍고 나서는 휴대폰 신세를 져야 했다.
성능이 휴대폰 카메라보다 딱히 나을 것도 없는 카메라긴 했지만 그래도 이게 뭐람.




내려오는 길에 찍은 이름모를 예쁜 나무.



이제 극장이 있는 센텀시티 역으로.
신세계 백화점과 롯데 백화점이 문자 그대로 붙어 있는 모양새가 좀 웃겼다.
나중에 알고보니 백화점 측이 설치해놓은 에스컬레이터가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걸 몰라서 지하철에서 계단으로 오르느라 고생했다.
예매해둔 [복수] 표부터 찾은 다음,
마스터 클래스를 어디서 하는지, 표는 어떻게 구하는지 알아보려고
– 아예 포기하고 미리 정보 수집을 안 했던 탓이다 –
인포메이션 센터에 갔다.
하지만 붕어빵에 붕어 없듯, 인포메이션 센터에는 인포메이션이 없더라.
부천 영화제 갈 때마다 느끼곤 했지만 여기도 자원봉사자들이 아는 게 너무 없다.
자원봉사자에게서 팜플렛을 잠시 빼앗아
일단 마스터 클래스 장소가 해운대 그랜드 호텔이라는 걸 알아냈다.
다시 센텀시티 건물을 나와 저 쪽 끝에 있는 매표소에 가서
오늘 오후 두기봉 마스터 클래스 표 있냐고 물었더니
매진된 걸로 알고 있단다.
"알고 있다"? 이건 잘 모른단 얘기잖아. 표 남았다고 했다가 없어서 욕 먹는 것 보다는 나으려나.

어차피 해운대도 가 볼 생각이었으므로 그랜드 호텔에 가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거기 가서 마스터 클래스 표가 있으면 구해서 들어가면 되는 것이고
없으면 바닷가 산책하면 되지 않겠는가.

11:00부터 [복수].
초반에 너무나 평화로운 가정이 나올 때부터 불안했다.
제목이 [복수]잖은가.
곧 뭔 일이 나도 날 것이라 생각했고 역시나 무자비한 킬러들이 평화로운 집안을 박살낸다.
그리고 나서 등장하는 주인공 조니 핼리데이.
극 중 이름 코스텔로가 [사무라이]의 알랭 들롱 역에서 따 온 것이고,
이 영화 자체도 [사무라이]의 킬러가 살아남았다면 나이를 먹은 뒤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 영화는 본 적이 없다.
이 영화는 기억을 잃어가는 남자의 복수담이라는 게 흥미로운 점이었다.
[메멘토] + [미션] + [방축]. 로맨틱하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한 남자들.

GV 시간에 오승욱 감독이 제일 먼저 장철의 [복수]와의 연관에 대해 질문했는데
통역자가 질문을 전달을 잘 못한 건지, 답변을 오승욱 감독님에게만 들리게 전해준 건지,
아무튼 관객들은 답변을 들을 수가 없었다.
30분 정도 진행했던 것 같은데 의자 하나 없이 귀빈을 세워둔 채로 진행된 것도 좀 문제가 아닐지.

GV가 끝나갈 무렵부터, 아니 시작할 무렵부터,
어떻게 두기봉 감독님에게 접근해서 챙겨간 [적각비협]과 [미션] 비디오 테이프
– 그렇다, DVD가 아니라 비디오 테이프인 것이다.
우린 그만큼 옛날부터 팬이었다고 뻐기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었던 것이다 –
에 싸인을 받을 것인가 고민했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서툰 영어로 부탁 말씀드릴 필요도 없었다.
GV 끝나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무대 앞으로 우루루 몰려나가 DVD며 티켓에 싸인을 받더라.
우리는 그냥 그 흐름에 슬쩍 끼어들었을 뿐.
[적각비협] 비디오 커버를 내밀면서 "I like it very much."라고 했더니
약간 미소를 지으며 "So long ago" 라고 하시더라.
두기봉 감독님이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무섭고 괴팍하기로 유명한 분인데
이 날 팬들에겐 굉장히 친절하셨다.
어느 팬질 초보자가 DVD 비닐 커버에 싸인받으려고 하니까
비닐 안의 커버지를 손수 빼내어 거기에다가 싸인을 해주실 정도로.
우리는 이젠 팬질에 어느 정도 이력이 붙어서,
미리 커버지 빼놓고 네임펜도 준비해 갔다.
또다른 초보자 하나는 볼펜만 들고 왔다가 우리 펜을 보더니 잠시 빌려가기도.




생각보다 쉽게 부산행의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면서 피곤함을 싹 잊었지만,
지하 푸드코트에 가서 인파에 시달리며 점심을 먹는 동안 다시 아드레날린 혈중 수치가 급격히 떨어져갔다.

어쨌든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로.
역에서 해수욕장까지는 생각보다 가까웠지만, 그랜드 호텔은 제법 멀었다.
그래도 걸을 만은 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카메라에 넣을 배터리를 샀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역시 마스터 클래스 표가 있었다!
당장 표를 사들고 현장으로.
22층에 있는, 전망이 멋진 방이었다.
두기봉 감독님은 성실히 준비를 해오신 듯.
자신의 영화 인생을 아홉개의 챕터로 나누어 말씀하시고,
거기에 대해 청중들이 질문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초반에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후기 경력에 대한 질문 시간이 너무 짧아져버렸다.
나름 메모를 좀 하긴 했는데 언제 정리할지는 알 수 없다.

마스터 클래스를 마치고 내려오다가 6층에 잠시 내려서
– 올라갈 때 보니 멋진 테라스가 있기에 –
해운대 전망을 감상했다.


그랜드호텔을 벗어나서는 웨스틴 조선 호텔 산책로를 따라 본격적인 해운대 산책을 시작.
시간이 없어서 산책로를 끝까지 가보진 못했는데,
어쨌든 이 정도 규모의 해수욕장이 이렇게 물이 깨끗하고 도심에서 가깝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운대 시장에서 오뎅을 맛보고는 서면으로.
원래는 이곳의 찜질방에서 잘 생각이었지만,
어머니께서 신종 플루 걱정을 많이 하셔서 결국 마음을 바꿨다.
김밥집에서 저녁을 먹고는 들은 풍월로 롯데 백화점 뒤쪽의 모텔 밀집 지역을 찾아갔다.
다행이 어렵지 않게 찾아 4만원에 1박을 했다.
모텔에 비치된 물건들은 민망했으나 TV 채널은 의외로 건전한 편.
첼시 – 토트넘 경기 재방송을 하기에
발락 골 장면까지만 보고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유로파 리그 하이라이트를 하더라.
베르더 브레멘 하이라이트 본다고 붙들고 있었는데 나오지도 않고 프로그램이 끝나버렸다. 쳇.
괜히 이거 때문에 조금 늦게 숙소를 나섰다가 08:00 서울행 고속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갈 때와는 달리 도로정체까지 있어서, 서울에 도착한 건 거의 14:00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터미널에서 황태해장국으로 점심을 먹고 상암으로 출발.
9호선 직행을 타서 시간을 벌었지만 당산 역에서 2호선이 늦게 오는 바람에 벌어놓은 시간을 까먹었다.
물론 그보다 더 큰 일은 상암에서 전철을 내린 뒤에 엄청나게 헤맸다는 거지만.
역에서 도보 20분이라길래 걷는 거 포기하고 택시 타려고 사전 조사를 게을리 한 것이 불찰이었다.
택시가 안 간다는 거다.
나중에 Sophie님 말씀들어보니 원래는 들어오는데 오늘이 하늘 공원 억새 축제 때문이 길이 막혀 그럴 거라고 하시던데 어쨌든.
결국 Sophie님이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오셔야 하는 사태가 발생.
근데 솔직히 안 헤맸어도 역에서 도보 20분은 아니다. 최소 40분.

돌아올 때 보니 상암 스타디움에서 드림 콘서트인가 해서 아이들 인기 가수 총 출동 행사 중.
여학생들 환호성 소리가 스타디움 밖 한참 떨어진 곳까지 들렸다.
월드컵 때도 이랬으려나. 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by 파이 | 2009/10/20 22:45 | Pas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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