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보이지 홈 Long Voyage Home 존 포드, 1940

by.허문영(영화평론가) 2016-07-06조회 4338
롱 보이지 홈 Long Voyage Home (1940)

존 포드의 ‘영예의 시기’(1939~1941)에 태어난 영화 중에 <젊은 날의 링컨> <역마차> <분노의 포도>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이 연재의 초기에 다뤄졌다. 남은 세 편의 영화 중에서 <롱 보이지 홈>과 <타바코 로드>를 이제 만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모호크족의 북소리>(1939)는 별도로 다루지 않을 생각이다. 이 영화에서는 아직 좋은 점을 찾지 못했다.) <롱 보이지 홈>(1940)은 촬영은 훌륭하지만 캐릭터나 이야기에서 포드적인 복합성이 부족한 영화, <타바코 로드>(1941)는 장점을 찾기 힘든 총체적인 실패작이라는 것이 존 포드 연구자들 사이에서의 일반적인 평가다. 물론 극소수의 지지자도 있다. 나로선 두 영화가 걸작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지만 여기엔 포드의 영화 이력의 중요한 계기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먼저 <롱 보이지 홈>을 만나보자.

이 영화에서 먼저 떠올려야 할 이름은 그렉 톨랜드Gregg Toland(1904~1948)이다. 관상동맥 혈전증으로 44세의 나이에 영면한 전설의 촬영감독 그렉 톨랜드는 존 포드와는 두 영화(<분노의 포도> <롱 보이지 홈>)에서 함께 작업했고, <롱 보이지 홈> 다음에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1941)을 찍었다. 천재였지만 영화의 기술적인 면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던 25세의 청년 오슨 웰스에게 촬영에 관한 모든 것을 그렉 톨랜드가 개인교습을 통해 가르쳤고, <시민 케인>의 성취가 웰즈의 것인 만큼 톨랜드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웰스는 <시민 케인>의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에 자신의 이름과 톨랜드의 이름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그에 대한 경의를 표현했다.

<시민 케인> 촬영장의 오슨 웰스와 그렉 톨랜드
 
그런데 이미 할리우드의 거목으로 군림하고 있던 존 포드와의 작업은 어땠을까. 이에 대한 자료나 증언이 별로 없어 정확한 사정을 알기는 힘들다. 다만 존 웨인은 <롱 보이지 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른 영화들의 경우) 촬영감독이 최대한의 효과를 위해 구도를 잡는 일은 대개 존 포드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 영화를 찍을 때는 반대로 촬영감독 톨랜드가 존 포드를 돕는 쪽이었다. <롱 보이지 홈>은 아마도 가장 아름답게 촬영된 영화일 것이다.”

이 말이 맞다면, 적어도 화면 구성에선 그렉 톨랜드가 주도적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존 웨인의 말대로 <롱 보이지 홈>의 화면은 더없이 아름답다. 그런데 여기엔 서사와 영상의 미묘한 불협화음이 있다. <분노의 포도>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이 불협화음이 포드와 톨랜드의 현실의 불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을 근거는 없지만, 당대 최고의 감독과 당대 최고의 촬영감독이 함께 빚어낸 영화가 모종의 불협화음을 낳는다는 것은 얼마간 흥미로운 일이다.

어떤 면에.서는 존 포드와 그렉 톨랜드는 최상의 조합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존 포드가 무성영화 시절부터 전경, 중경, 후경을 함께 담는 심도화면에 몰두해왔고, 무르나우에 감화된 뒤로 종종 표현주의적 조명과 화면 구성에 심취했음을 알고 있다.(<네 아들> 편 참조) 딥포커스의 창시자로 알려졌으며,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표현주의적 영상의 대가인 그렉 톨랜드는 포드의 이상적 동반자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표현주의적 영상에 종종 이끌리긴 했지만 포드는 그 세대의 다른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사실주의자였다. 적어도 포드의 유성영화에서 카메라는 초월적이거나 자기 과시적인 시각 기계가 아니었다. 카메라의 시선이 인간의 시선과 다른 차원의 것으로 인지되거나 카메라의 존재가 관객에게 의식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이징 오브 더 문> 3부의 사각촬영은 드문 예외다.) 하지만 젊고 야심적인 톨랜드는 카메라의 비인칭적 시선과 기계적 역량에 몰두함으로써 종종 카메라의 권능을 과시하며 일상적 지각양식에 충격을 가한다. 심도화면을 찍는 방식에서 두 사람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같은 해 포드가 아서 밀러를 기용해 찍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의 한 장면(#1)과 톨랜드가 찍은 <시민 케인>의 한 장면(#2)을 비교해보자

#1


#2
 
포드의 심도화면에는 전경의 사물, 중경의 인물, 후경의 또 다른 인물이 극히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이것이 심도화면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으며, 화면의 다양한 결과 섬세한 아름다움을 놓치기에 십상이다. 반면 딥포커스 기법을 과시하는 톨랜드의 심도화면에는 전경의 인물은 클로즈업으로 후경의 인물은 익스트림 롱숏으로 대비되어 있어, 누구나 이 구도의 작위성을 의식하고 인물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시각적 수사학 자체를 감지하게 된다. 이 쇼트는 두 인물을 따로 찍어서 합성한 것인데, 톨랜드는 다른 몇 장면에서도 딥포커스 효과를 위해 합성을 시도했다.

앙드레 바쟁은 <시민 케인>의 “바로크적 요소의 과도함”을 지적하면서도 그것의 딥포커스가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시각적 공간의 전체를 동일한 선명도로 포착”함으로써 “지각 가능한 연속성을 회복시켰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 찬사는 오히려 존 포드나 장 르누아르에게 어울릴 것이다. 오슨 웰스는 딥포커스를 즐겨 사용한 이유를 묻자 “인간의 눈이 보는 세상은 딥포커스 화면에 보다 가깝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는데, 웰스 역시 톨랜드의 딥포커스가 지닌 수사학적인 면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렉 톨랜드는 과장된 딥포커스 뿐만 아니라 사실적인 심도화면에도 뛰어났으며, 윌리엄 와일러와의 작업(<폭풍의 언덕> <작은 여우들> <우리 생애 최고의 해>)에서 특히 탁월한 능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와일러의 <데드 엔드>(1937)에서 이미 톨랜드는 <시민 케인>의 수사학적 딥포커스를 시도하고 있다. 우리로선 톨랜드의 오래된 야심이 또 다른 천재 야심가 오슨 웰스를 만나 만개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롱 보이지 홈>으로 돌아오자. 유진 오닐의 네 편의 희곡을 더들리 니콜스가 각색한 이 영화는 2차대전 시 영국 화물선 선원들의 생활을 담고 있으며, 중심인물이 따로 없는 앙상블 드라마이다. 선상이 무대의 거의 전부이며, 나머지 공간도 항구로 제한되어 있다. 선원들은 배라는 폐쇄공간에의 감금을 선택한 존재, 바다에 자신을 유폐한 자들이다. 그들은 서사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육지의 기억으로부터 바다와 배로 도피한 것이다.

우울한 현자와도 같은 선원 당키맨은 이렇게 말한다. “기억을 가장 잘 다루는 방법은 기억을 잊는 거야. 남자가 바다로 나설 때는 육지에 관한 건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 돼. 육지는 당신을 더 이상 원하지 않거든. 내게도 나쁜 기억이 있지. 그건 전부 육지에서 온 거야. 나는 육지를 버렸고, 육지도 나를 버렸어.”

집으로 가는 머나먼 항해. 이 제목은 반어적이다. 올슨을 제외하면 선원 누구도 집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배를 떠난다면 그건 귀가가 아니라 죽음이다. 폭풍우로 부상당해 죽거나(양크), 독일군의 습격으로 죽거나(스미스, 드리스콜). 그러지 않더라도 그들은 소명도 전망도 없이 조금씩 죽어갈 뿐이다. 포드의 서부극을 ‘약속의 땅을 찾아 황야를 가로지르는 운동의 영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웨건 마스터> 편 참조), 죽음을 향해 바다를 떠도는 자들의 이야기인 이 영화는 서부극의 염세적 번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존 포드가 유진 오닐과 가까운 친구라 해도 이처럼 염세적인 희곡에 끌린 이유는 불확실하다. 배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사건도 없고 운동감을 살릴 여지도 제한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더구나 대사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 포드로서는 촬영에 거의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다. 운명론과 폐소공포증의 공기를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 그렉 톨랜드라는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은 아마도 이 프로젝트의 최상의 동반자였을 것이다.

<롱 보이지 홈>의 첫 시퀀스는 우리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막이 열리면 밤의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섬 남자들의 노래와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섬 여인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나무에 기대 유혹하듯 몸을 비튼다.(#3) 그리고 기항하지 않은 채 연안에 정박 중인 배의 거대한 실루엣이 위협적으로 등장한다.(#4) 갑판의 선원들은 노랫소리를 향해 불안과 망설임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 서 있다.(#5, #6) 지금이 전시임을 알려주는 라디오방송 외엔 대사 없이 5분간 지속되며, 귀기와 외설과 불안과 망집이 교차하는 이 시퀀스는 포드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오프닝 시퀀스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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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들은 섬에 닿지도 바다로 가지도 못한 채 그사이에 멈춰 있다. 한쪽에는 초대인지 위협인지 불분명한 북소리와 노랫소리, 누군가를 유혹하려는지 아니면 무엇엔가 이미 취해 있는지 알 수 없는 여인들의 에로틱한 몸놀림이 있다. 반대쪽에는 라디오방송이 암시하는 전쟁 그리고 바다가 내재한 상시적인 재난의 위협이 있다. 말하자면 지금 선원들은 신화적 유혹과 역사적 사건 사이에 놓여 있다. 물론 어느 쪽이나 위험하다. 선원들은 그 경계에서 초조한 얼굴로 서성이고 있다. 경계란 실은 존재하지 않는 장소이거나 정박할 수 없는 곳이며 그들은 이제 곧 하나씩 사라질 것이다.

<롱 보이지 홈>이 도피를 위해 바다를 택했으나 에로스의 유혹도 역사의 위협도 피하지 못한 사내들의 이야기라면, 이보다 더 멋진 오프닝 시퀀스를 상상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 성취의 반 이상은 그렉 톨랜드의 것으로 돌려져야 할 것이다. 전경의 피사체를 극대화한 특유의 딥포커스, 실루엣 효과를 과시하는 빛과 어둠의 능란한 대조, 현란한 앵글 사용은 <시민 케인>에서의 만개를 예고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대로 이 영화에서 톨랜드의 촬영과 포드의 서사에는 미묘한 불협화음이 있다고 나는 느낀다. 불협화음의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볼 수 있다.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이 오프닝 시퀀스는 과도하게 멋지다. 이후에 이어질 본편보다 5분 동안의 오프닝이 더 크고 화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건 본편이 빈약하다기보다 오프닝과 본편이 이질적이라는 느낌에 가깝다. 오프닝에서 예기된 모호하고도 매혹적인 대립항들의 긴장이 본편에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오프닝에는 신화적이고 몽환적인 기운이 가득하지만, 본편은 대부분 사실적인 사건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톨랜드의 시각적 수사학이 포드의 배우들의 연기 방식에 맞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다. <시민 케인>은 연출과 촬영뿐만 아니라 50년의 세월을 연기한 배우 오슨 웰스의 연기력으로도 칭송받았다. 하지만 웰스의 연기는, 케인이라는 캐릭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시적이고 연극적인 제스처로 가득하다. 톨랜드의 시각적으로 과장된 프레임이 웰스의 자기 과시적 몸짓을 고양시킨다. 하지만 포드의 배우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포드는 할리우드 고전기 감독 중에서도 양식적 연기, 연극적 연기를 가장 멀리한 사람이며, 배우가 지닌 고유의 존재감을 가장 존중한 사람이다. 또한 그의 영웅들은 앞서 여러 영화에서 보았듯이, 과시하기는커녕 망설이듯 프레임에 진입한다. 앞서 예로 든 한 장면(#2)에서 웰스의 일그러진 얼굴은 딥포커스 화면의 전경을 가득 채울 때 그는 무언으로 자신의 분노와 인내를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롱 보이지 홈>에서 존 웨인의 얼굴은 어떤가?(#7)

#7

이 장면 외에도 여러 쇼트에서 웨인은 프레임의 전경을 채우지만, 그의 얼굴은 텅 비어있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가 연기한 올슨은 이 앙상블 드라마에서도 가장 존재감이 약한 인물이다. <롱 보이지 홈>에는 시각적으로는 강렬하지만 공허한 쇼트들이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 다음은 다른 사례다.

#8


#9


#10

인물(스미스)이 프레임의 수직선을 질주하다 소실점 밖으로 사라진다. 이런 부류의 심도화면이 드문 것은 아니지만 톨랜드는 달리는 인물이 점이 될 때까지 찍으면서 화면의 깊이를 과장한다. 문제는 바로 다음 쇼트에서 인물이 쉽게 붙잡힌다는 것이다. 공간의 아득한 깊이와 소실의 운동이 다음 쇼트에서 간단히 부정될 때, 이런 시각적 수사학이 장식적으로 보이지 않기란 힘들다.

몇 가지 결함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롱 보이지 홈>을 좋아한다. 사적인 10베스트에 넣기는 망설여지지만 이 영화의 소란과 활력과 어둠을 사랑한다. 하지만 포드의 유성영화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시각적 수사학의 과잉이 마음에 걸렸다. 존 웨인의 진술이 맞다면 그 과잉은 <시민 케인>과 <작은 여우들>을 비슷한 시기에 찍으면서 정점에 이른 그렉 톨랜드의 의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물론 톨랜드 역시 이 시기를 지나면서 수사학적 과장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그는 누가 뭐래도 영화사에서 가장 뛰어난 촬영감독이었으며, 나는 그가 촬영한 영화 중에서 윌리엄 와일러의 <우리 생애 최고의 해>(1947)를 가장 좋아한다.)

존 포드는 표현주의적 구도와 조명에 심취했지만, 그 한계도 이 영화를 만들면서 느꼈을 것으로 나는 짐작한다. 포드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더 고도의 균형을 향해 더 나아가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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