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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5   한국 영화계의 스타, 약인가 독인가 - Film2.0 제 235 호 (2005.06.14 ~ 2005.06.21)
한국 영화계의 스타, 약인가 독인가 - Film2.0 제 235 호 (2005.06.14 ~ 2005.06.21)
[웨건 마스터]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올린다.


http://www.film2.co.kr/column/roughcut/roughcut_final.asp?mkey=110
김영진의 러프컷 - 한국 영화계의 스타, 약인가 독인가
Film2.0 제 235 호 (2005.06.14 ~ 2005.06.21) 78~79쪽.

한국에 온 저명한 일본의 영화평론가이자 문예이론가인 하스미 시게히코 선생의 존 포드 특별 강연이 종로의 필름포럼 극장에서 지난 5월 말에 열렸다. 그는 포드의 영화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왜곤 마스터="">에 대해 논했는데, 이날 강연에서 특히 인상에 남았던 것은, 시게히코가 이 영화를 특별히 평가하는 이유였다. <왜곤 마스터="">는 스타가 나오지 않는 존 포드 식의 사치스런 실험영화라는 것이다. 1개월 만에 평소 제작비 규모의 절반으로 이 영화를 만들면서 포드는 제작자, 관객, 비평가 모두를 무시하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연출했다. 정착할 땅을 찾는 몰몬교도 집단을 안내하는 두 카우보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왜곤 마스터="">에는 존 포드 하면 생각하는 서부극의 추적 장면이나 결투 장면 같은 게 없다. 포드의 대표작 <역마차>와 비슷한 구조의 서부극 같기는 하지만 아주 느슨한 영화다. 존 포드는 서부극의 풍경을, 그 풍경 안에서 움직이는 말과 사람을, 곧 그 순수한 움직임을 찍었다. 풍경 속 사람을 찍을 때는 대스타가 필요 없다. 그래서 당시 무명이었던 배우 벤 존슨과 해리 캐리 주니어를 캐스팅했다. 그 배우들에게 감독이 원한 건 마음껏 말을 타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장면, 아마 이것이 존 포드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 장면 아닐까”라고 하스미 시게히코는 말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찍는 것만큼 영화에서 사치스런 장면은 없다. 새로 정착할 땅을 찾아 천천히 개척민들이 움직이는 것이 이 영화의 주요 장면이다.

하스미 시게히코와 마찬가지로 존 포드의 영화를 좋아하는 개인적 입장에선 그의 변호가 퍽 설득력 있었다. 그의 강연 후에 본 영화 <왜곤 마스터="">도 훌륭했다. 시게히코가 ‘쇼트의 힘’이라고 부른 것의 저력이 느껴진다. 조작된 것이 아닌 사물의 생생함 그 자체를 찍은 것이 주는 설득력이다. 그렇게 쇼트의 힘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왜건 마스터="">라는 걸 찬양하면서 시게히코는 “나야말로,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이야 말로 존 포드에 대해 제대로 말할 수 있다”는 걸 강조했다. 관객인 우리가 존 포드를 미국인들의 편협한 평가에서 구해내고 다시 발견해야 한다는 그의 태도 또한 인상적이었다. “미국인들은 존 포드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가르쳐줘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자만심이 아니다. 미국 전문가들보다는 내가 존 포드의 재미없는 영화를 100배 이상 봤다는 뜻”이라고 시게히코는 말했다. 시게히코의 전언은 호소력이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줄어들고 있는 열정적인 관객 공동체의 황혼을 느끼게 하는 쓸쓸함도 있었다. 시게히코는 단호한 낙관을 갖고 있었으나 사실 오늘날 존 포드의 영화에 깃든 담백한 쇼트의 힘을 이해하는 관객은 많지 않다. 이런 유형의 감성을 이해하는 관람 공동체를 갖기 위해선 한 편의 영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를 어떤 영화들이 포위하고 있는가, 라는 환경도 중요하다.

존 포드가 영화사의 의뢰와 타협을 거쳐 만든 영화들 가운데 숱한 걸작들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중에는 물론 태작들도 많다. 가끔 <왜곤 마스터="">처럼 창작자의 순수한 자의식이 관통해 만들어진 영화들도 있다. 그런 것들은 당대에는 크게 이해받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수십 년이 지난 다른 나라에서 그의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큰소리 치는 비평가와 관객들의 마음을 통해 되살아날 수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영화의 위대한 힘, 영화 문화 공동체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시게히코는 <왜곤 마스터="">가 예술적인 영화라 훌륭한 것이 아니라 관객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자연스런 화면의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사치스런 작업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이런 것은 점점 감정의 오염도가 심해지는 우리의 영화 환경에서 구하기 힘들어지는 순수일지도 모른다. 매우 역동적으로 움직이지만 언제나 불안 요소를 잠복하고 있는 한국영화 산업에서 존 포드가 행한 사치스런 모험 같은 것은 잘 허용되지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다가 최근 개인적으로 맡고 있는 대학원 강의에 특별 강사로 초빙한 현역 제작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최근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충무로에서 전면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스타 중심의 산업 질서가 꾀할 재앙의 징조를 우려했다. 갈 수록 스타 시스템 위주로 끌려가는 영화산업의 메카니즘에서는 제작자와 감독, 배우들 사이의 창조적인 긴장관계가 끼어들 틈이 좁아진다. 자본의 변화가 이런 흐름을 만들어냈으나 정작 자본을 운영하는 인간들이 영화 자체의 질보다는 스타를 앞세운 돈계산을 하기 시작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IMF가 터지기 직전까지 충무로에 투자한 대기업 자본들은 순전히 컨텐츠의 질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오늘날의 전주들은 그때와 또 다르다. 멀티플렉스를 운영하며 한국영화에 투자하는 극장 자본은 극장에 채울 컨텐츠의 상품성 유무를 투자의 기준으로 본다. 이렇게 되자 영화제작자들의 운신의 폭은 더 좁아졌다. 인지도 있는 스타와 장르에 국한해 단기적으로 관심을 끌 수 있는 기획물을 요구하는 극장 자본은 시나리오의 완성도, 제작사의 역량, 감독의 가능성 따위보다는 인기 스타와 장르의 대중 호감 여부 등과 같은 밋밋한 팩트를 근거로 투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버는 쪽은 스타 매니지먼트 사업체들과 극장업자들 뿐이다.

한 편의 영화가 거둔 매출의 50%를 극장이 가져가는 상황에서(유통 마진이 이렇게 높은 분야는 영화계가 유일할 것이다.) 극장 체인을 갖고 있는 주요 투자 배급사를 제외한 현장의 제작사와 군소 투자 조합이 가져가는 이익은 보잘것없다. 그런데도 스타들의 몸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불황의 조짐이 보일수록 투자사들은 스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조달한 공적 기금도 심각하게 줄어든 상태이고 새로운 투자 자본은 충무로를 상대하지 않는다. 영화 산업이 가장 안전하다고 여기는 스타 중심의 기획물에 편중된 사이 역설적이지만 영화 산업의 최대 매력인, 위험한 만큼 대가도 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 어느 모로 보나 한국 영화 산업의 현실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스타들을 데리고 있는 매니지먼트 회사들이다. 최근에는 매니지먼트 회사들이 제작사에 공동 지분을 요구하는 것이 관행이 돼가고 있다. 얼마 전 그럭저럭 흥행한 어떤 영화는 제작사가 매니지먼트 사와 지분을 50%로 나눴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제작사는 극장과 배급 비용을 떼어주고 나면 실질적으로 전체 수익의 10%도 못 나눠 받게 된다.

최근에는 상황이 더 위험한 쪽으로 흐르고 있다. 돈 가뭄에 시달리는 충무로에서 요즘 가장 큰 변수는 DMB의 컨텐츠를 채우기 위해 영화 산업에 투자하려는 통신 자본의 유입이다. 이들은 스타 매니지먼트사들과 손잡고 대대적으로 충무로를 흔들 만한 규모의 돈을 투자하려 든다. 극장 자본과 통신 자본이 극장과 휴대전화라는 자신들의 윈도 매출을 올리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사이에 앉아서 그들의 호출을 받으며 비교적 큰돈을 쥐게 된 매니지먼트사들은 다른 기업과의 합병 인수를 거쳐 주식 상장을 통한 이익을 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여하튼 이런 흐름에서 관객인 우리가 보게 될 모험적인 영화, 돈이 많이 투자된 영화가 아니라, 영화의 맛을 즐기는 관람 공동체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거듭 보게 될 그런 영화들의 출현은 점점 난망한 일이 될 것이다. 스타가 나오지 않으면 투자가 되지 않고, 투자를 받기 위해 제작사는 자신의 크레딧을 포기한 채 매니지먼트사에 휘둘리고, 그 와중에 자기만의 브랜드를 걸고 관객에게 다가가는 제작사의 위상은 점점 좁혀진다면, 결국 영화계는 이익을 노리고 덤벼드는 돈사냥꾼들의 단기적인 놀이터가 될 것이다. 그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되면, 몇 년 후의 한국영화산업은 큰 후유증을 겪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이 일방의 책임은 아니다. 스타들의 품에 굴욕적으로 복종하는 숱한 제작사들의 처신에도 문제가 있다. 시네마서비스, 사이더스, MK 버팔로 등의 비교적 굵은 제작사들은 이 땅에서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관객을 위해 좀 더 길게 보고 생명력이 있는 영화를 생산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어떤 복합적인 상황이 있었더라도 그들이 최선을 다해 그 존재 증명을 다 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영화다운 영화의 존재 증명을 해야 할 집단으로서 그들이 생존하지 못한다면 이곳 영화 산업의 미래도 그다지 밝지는 않을 것이다.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잘나가는 감독일수록, 자본과 스타의 움직임에 휘말리는 그런 상황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모험하지 않으면, 마침내 그 구조의 희생양이 된다는 역설도 생각해 봐야 한다. 영화계 내에서 새로운 스타를 발견하지 않으면 영화계의 권력은 그만큼 위축된다.

이에 관한 불행한 사례로 최근 개봉한 <태풍태양>이 있다. 이 영화가 걸작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모험할 만한 가치가 있었던 작품이었는데도, 마침내 허망하게도 모험을 해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사례로 남게 된 것은 슬픈 일이다. 이 영화의 시사회가 있던 날, 영화 상영이 끝난 후 극장 앞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데, 제작자가 다가와 영화를 본 소감을 물었다. 영화의 장점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지만 이날 유난히 어두웠던 그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왜 그렇게 위축됐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거의 울 듯한 표정이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요. 특히 방송은 더 심해요. 스타가 한 사람도 나오지 않는다고... 난 앞으로도 청춘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은데 이러면 다신 못할 것 같아요.” 모험적인 영화가 성공하는 사례가 없는 영화 산업은 발전하지 못한다. 그 모험은 관객인 우리, 제작자들, 감독들이 함께 공모하고 협력해야 성사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영화의 질과 정체성을 고민하던 영화계 내부의 연대감이 깨진 듯한 인상을 주는 이런 현실에서, 의식 있는 스타배우들도 과연 미래가 있는 영화 산업의 생존자로서 길게 남으려면 작금의 영화계에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by Olsen | 2005/06/25 17:29 | 그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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